고령 김씨
고령 김씨(高靈金氏)는 경상북도 고령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고양(高陽)은 고령(高靈)의 고호라 한다.
나라 | 한국 |
---|---|
관향 | 경상북도 고령군 |
시조 | 김남득(또는 김의) |
원시조 | 김알지(金閼智) |
중시조 | 김남득 |
집성촌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호암리・상월면 월오리,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울산광역시, 경상남도 양산시, |
주요 인물 | 김무, 김사행, 김사문, 김사충, 김사신, 김수문, 김면, 김연 |
인구(2015년년) | 15,611명 |
역사
편집시조 김남득(金南得)은 의성군(義城君) 김석(金錫)의 11세손으로 고려 때 전리좌랑(典理佐郞)을 역임한 김의(金宜)의 아들이다. 초명은 김기지(金麒芝)이고 고려 충혜왕 때 진사시에 합격하고 공민왕 때 상주목사, 감찰집의, 양광도안렴사를 역임하였다.
공민왕때 최유가 왕을 폐위하려할 때 김기지(金麒芝)는 왕위 보존에 공을 세워 익대공신 고양부원군(高陽府院君)에 봉해지고 "득어영남지의(得於嶺南之意)"를 하사받았는데, 여기에서 두 글자 남(南)과 득(得)을 취하여 이름을 김남득(金南得)으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전리좌랑 김의(金宜)이다.[1]
시조에 대해
편집《김씨 분관록》·《증보문헌비고》·《조선씨족통보》등의 문헌에는 시조가 전리좌랑 김의(金宜)이며, 수로왕의 후손으로 고령(高靈)으로 분적하였다고 하였다. 아들 김남득(金南得)은 고양부원군(高陽府院君)이다.
본관
편집삼한시대의 고령군 일대에는 진한의 여담국, 소등붕국 등 여러 부족국가가 형성되었다가, 신라시대에 757년(경덕왕 16)에 전국에 9주를 설치하고 군·현의 명칭을 고칠 때 고령군(高靈郡)으로 개칭하고 강주(康州. 현재의 진주)에 소속시켰다.
고려시대에는 1018년(현종 9)는 영천현(靈川縣)으로 개칭되면서 이 지역은 경산부(京山府, 현 성주)에 예속시키고 야로현은 합천군으로 이속되었다. 1175년(명종 5)에 감무를 설치하였다. 조선시대 1413년(태종 13)에 현감을 설치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지방관제를 개정하면서 고령현을 고령군으로 개칭하였다. 1979년에 고령면이 고령읍으로 승격되었다. 고령읍은 2015년 4월 대가야읍으로 변경되었다.
인물
편집고려
편집- 김남득(金南得): 김의의 아들, 고양부원군(高陽府院君)
- 김무(金畝): 고양부양군 김남득의 아들, 공양왕 때 사헌장령, 정몽주와 함께 고려 왕조를 지키려다가 조선이 건국된 후 숙청됨
조선
편집분파
편집- 고산파(高山派)
- 신녕파(新寧派)
- 충주파(忠州派)
- 노성장선파(魯城長善派)
- 김제파(金堤派)
- 공주합천달성파(公州陜川達城派)
- 양천파(陽川派)
- 순천공파(順天公派)
- 고령파(高靈派)
- 노성죽헌파(魯城竹軒派)
- 합천묘성파(陜川妙城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