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일 (1923년)
김형일(金炯一, 1923년 10월 28일 ~ 1978년 6월 3일)은 대한민국의 군인 출신의 대한민국 정치인이다. 제6,7,8,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형일 | |
왼쪽부터 이후락, 양유찬, 유재흥, 양유찬의 부인, 그리고 사진에서 맨 오른쪽이 김형일 장군 | |
본관 | 김녕(金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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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무 | 대한민국 육군 |
복무기간 | 1946년 ~ 1962년 |
근무 | 육군본부 국방부 |
최종계급 | 중장(中將) |
지휘 | 육군참모차장 국방부 장관 보좌관 |
생애
편집1960년 민주당이 집권한 뒤 이종찬 장군은 국무총리 장면을 찾아 박정희 장군의 중용을 건의하였다.[1] 그러나 장면은 이 문제에 대한 확답을 주지 않고 매그루더 사령관을 찾아가 논의하였다.[1] 얼마 후 매그루더는 대한민국의 육군본부에 박정희의 신원조회를 요청하였다.[1]
육군참모차장으로 있던 김형일은 '박정희는 레프트(좌익)다'고 답변하였다. 그의 확답을 받은 매그루더는 장면을 찾아 '그런 사람을 어떻게 그런 요직에 앉혀뒀냐'며 항의하였다. 당시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으로 있던 박정희는 이 일이 있은 후 2군 부사령관으로 전출당하였다.[1]
이때 박정희의 신원을 매그루더에게 전한 뒤 좌익으로 지목한 김형일은 이 일로 박정희와 등을 지게 되었으며, 5.16 군사정변 후 군정에 반대하다가 국방부 장관 특별 보좌관 자리에서 해임 당했다.<이근식>
그 뒤 2년간 미국에 유학 다녀온 후 귀국, 야당으로 투신하였다. 그는 6대 국회 때 정부전복 음모에 연루돼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1] 9대까지 내리 4선을 하면서 신민당 원내총무 등을 역임하였고 1978년 56세로 사망하였다.
같이 보기
편집역대 선거 결과
편집실시년도 | 선거 | 대수 | 직책 | 선거구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당락 | 비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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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 총선 | 6대 | 국회의원 | 전국구 | 민정당 | 1,870,976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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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구 7번 | 초선 | |||
1967년 | 총선 | 7대 | 국회의원 | 경기 화성군 | 신민당 | 36,852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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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 재선 | |||
1971년 | 총선 | 8대 | 국회의원 | 경기 화성군 | 신민당 | 42,197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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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 3선 | |||
1973년 | 총선 | 9대 | 국회의원 | 경기 수원시·화성군 | 신민당 | 61,150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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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 | 4선 |
각주
편집외부 링크
편집전임 (초대) |
제1대 특무부대장 1950년 10월 20일 ~ 1950년 12월 15일 |
후임 백인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