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 (1490년)
윤관(尹寬, 1490년-1550년) 또는 윤자관(尹子寬)은 조선 중기의 문신, 성리학자이다. 정암 조광조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중종 초 사림파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1519년의 기묘사화때는 상으로 화를 면하였다. 자는 율옹(要翁), 호는 삼휴자(三休子),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조선후기 소북과 남인의 중진인 윤휴(尹鑴)의 고조부였다. 조광조(趙光祖)의 문인.
생애
편집자는 율옹(要翁), 호는 삼휴자(三休子)이다. 단련사(團練使)를 지낸 윤취(尹就)의 아들이다. 정암 조광조(趙光祖)의 문하생이 되어 성리학을 수학하였으며 그로부터 김종직-김굉필, 정여창-조광조로 이어지는 학통을 이어받았다.
그 뒤 기준(奇遵), 백인걸(白仁傑), 신잠(申潛), 안정(安珽) 등 신진사류(新進士類)와 교우(交友), 학문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중종 초 그의 스승인 조광조 일파가 집권하자 조광조 등의 천거를 받았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1519년(중종 14) 상을 당하여 사직하고 3년상을 치렀다. 그 해의 기묘사화(己卯士禍) 때는 친상(親喪)으로 화를 면했으나 그 후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오랫동안 외부와 연락을 끊고 집에서 두문불출하다가 1522년 음보로 출사하였으나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한직을 자청하여 소격서참봉(昭格署參奉)이 되고, 뒤에 충익부도사(忠翊府都事), 군자감판관(軍資監判官)을 역임하였다.
그 뒤 평시서직장(平市署直長)이 되고,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를 거쳐 아산현감으로 나갔다. 1541년 안동판관에 제수되고, 1548년(명종 3) 충익부도사, 군자감판관을 지냈다. 그 뒤 모친상(母親喪)을 당하여 3년상을 치르던 중 병을 얻어 죽었다.
가족 관계
편집같이 보기
편집참고 문헌
편집- 국조인물고
- 남원 윤씨 세보
- 이홍직, 새국사사전, (교학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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