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원
장승원(張承遠, 1852년 ~ 1917년)은 조선의 문신이다. 자는 공유(公裕), 호는 운정(雲庭)이다. 경상북도 칠곡 출신이며 장석구(張錫龜)의 아들로, 판서 장석용(張錫龍)에게 출계하였다.[1][2] 국무총리를 지낸 창랑 장택상, 장직상의 아버지기도 하다.
생애
편집1885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 주서가 되고 .[1] 이어 부수찬, 교리, 장령, 응교, 수찬, 장악원정, 사복시정 등을 거쳐[1] 1897년, 통정대부에 승자되었다.[2] 그 후 청송군수, 중추원의관, 찬위, 궁내부 특진관을 지내고.[1], 1904년(광무 8) 허위의 추천으로 경상북도관찰사로 나아갔다.[1] 1906년 비서감승을 거쳐, 궁내부 특진관에 이르렀다. 의정대신 민영규가 지은 신도비문이 있다.[1][2]
대농토를 소유한 대지주였으며 박정희의 아버지 박성빈은 한때 장승원의 집을 출입했으며 그 인연으로 해서 박정희의 둘째 형 박무희는 그로부터 논 다섯마지기를 빌어 7:3의 비율로 소작하기도 했다.[3] 박상진이 만든 광복회에서 군자금을 요청하였으나 거부하였고 이후 이 건을 일제에 밀고하려고 하자 1917년 11월 10일 광복회원인 채기중, 강순필에 의해 처단되었다.
기타
편집그의 첩 주서운에게는 아들 장록상이 있었는데, 장길상은 그를 자신의 서제로 승인했으나 1936년 2월 4일 장길상 사망 직후인 그해 2월 10일 부인 조남철은 장록상이 장승원의 친자가 아니라며 친생자관계 확인 부존재 소송을 제기하였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