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로드 작전

크로스로드 작전(Operation Crossroads)은 1946년 중반 미국이 비키니 환초에서 실시한 두 차례의 핵무기 실험이다. 이는 1945년 7월 16일 트리니티 이후 첫 번째 핵무기 실험이자,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 원자폭탄 이후 첫 핵폭발이었다. 실험의 목적은 핵무기가 군함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실험(에이블, Able)
두 번째 실험(베이커, Baker)

크로스로드 실험은 마셜 제도에서 실시된 많은 핵실험 중 첫 번째였으며, 사전에 공개적으로 발표되고 대규모 기자단을 포함한 초대된 청중이 참관한 최초의 시험이었다. 이 작전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핵무기를 개발했던 맨해튼 프로젝트가 아닌 윌리엄 H. P. 블랜디 중장이 이끄는 합동군/해군 특수부대 1에 의해 수행되었다. 95척의 목표 선박 함대가 비키니 라군에 집결되어 1945년 나가사키에 투하된 것과 같은 팻 맨 플루토늄 내파형 핵무기를 두 번 폭발시켰다. 각각의 폭발력은 TNT 23킬로톤(96 TJ)이었다.

첫 번째 실험은 에이블(Able)이었다. 폭탄은 1946년 영화 길다에서 리타 헤이워스의 캐릭터 이름을 따서 길다로 명명되었으며 1946년 7월 1일 보잉 B-29 슈퍼포트리스 빅 스팅크스(데이브의 드림)에서 투하되었다. 목표 지점을 649m(2,130피트)만큼 빗나갔기 때문에 예상되는 선박 손상량보다 적다.

두 번째 실험은 베이커(Baker)였다. 이 폭탄은 헬렌 오브 비키니(Helen of bikini)로 알려졌으며 1946년 7월 25일 수중 90피트(27m)에서 폭발했다. 방사성 바다 물보라는 광범위한 오염을 일으켰다. 찰리(Charlie)라는 이름의 세 번째 심해 실험은 1947년에 계획되었지만 주로 미 해군이 베이커 실험 이후 대상 선박의 오염을 제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취소되었다. 결국, 자침이 아닌 폐기가 가능한 목표 선박은 9척뿐이었다. 찰리는 1955년 멕시코 해안(바하 캘리포니아)에서 수행된 심해 사격인 위그왐 작전으로 일정이 변경되었다.

비키니의 원주민은 LST-861을 타고 섬에서 대피했으며 대부분은 롱게리크 환초로 이동했다. 1950년대 일련의 대규모 열핵실험으로 인해 비키니는 방사능 오염으로 인해 자급 농업 및 어업에 적합하지 않게 되었다. 비키니는 2017년 현재 무인 상태로 남아 있지만 스포츠 다이버들이 가끔 방문하기도 한다.

기획자들은 크로스로드 작전 실험 참가자를 방사선 질환으로부터 보호하려고 시도했지만 한 연구에 따르면 참가자의 기대 수명이 평균 3개월 단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표적 선박에 대한 베이커 테스트의 방사능 오염은 핵폭발로 인한 즉각적이고 집중된 방사능 낙진의 첫 번째 사례였다. 미국 원자력위원회의 최장수 의장이자 화학자 글렌 T. 시보그(Glenn T. Seaborg)는 베이커를 "세계 최초의 핵 재앙"이라고 불렀다.[1]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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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eisgall 1994, ix쪽.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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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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