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 있어서든지 하찮은 것이라도 자가 독자(獨自)의 생활(生活)만치 끔찍대단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 속에는 남모르는 설움도 있거니와 한 옆에 남 알리지 아니하는 즐거움도 있어서 사람마다의 절대(絶對)한 일세계(一世界)를 이루는 것입니다.

나에게도 조그마한 이 세계(世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것을 남에게 헤쳐 보이지도 아니하는 동시(同時)에 그렇다고 가슴속 깊이 감추어 두지만도 아니하였습니다. 이 사이의 정관적조(靜觀寂照)와 우흥만회(偶興漫懷)와 내지(乃至) 사사망념(邪思妄念)을 아무쪼록 그대로 시조(時調)라는 한 표상(表象)에 담기에 힘쓰며 그리하여 그것을 혼자 씹고 맛보고 또 두고두고 뒤적거려 왔습니다. 내 독자(獨自)의 내면생활(內面生活)인 만큼 구태 남에게 보일 것도 아니요 또 보인대도 아무에게든지 감흥(感興) 있을 것이 물론 아니었습니다. 사상(思想)으로, 생활(生活)로, 본디 나뿐의 것이던 것처럼, 문자(文字)로, 표상(表象)으로도 결국은 또 하나뿐의 것일 물건입니다. 본디부터 시(詩)로 어떻다는 말을 남에게 들을 것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오랫동안에는 그 중(中)의 일부(一部)가 혹 친우(親友)의 눈에 띠기도 하고 얼마쯤 동정(同情)과 공명(共鳴)을 가지는 어른에게는 한번 세간(世間)에 물어봄이 어떠하냐는 말씀도 더러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그러지고 변변치 못한 것이지마는 그대로 내게 있어서는 끔찍 대단한 유일(唯一)한 구슬인 것을, 까닭 없이 저잣거리에 내어던짐이 일종(一種)의 자기모독(自己冒瀆)일 듯하여 할 수 있는 대로 이것을 피(避)하여 왔습니다. 나의 꽁한 성미는 특히 이 일에서 그 본색(本色)을 부려 왔었습니다.

햇빛은 언제 어느 틈으로서 쪼여 들어올지 모르는가 봅니다. 어떻게든지 앓는 소리 할 구멍을 뚫으려 하는 이 민중(民衆)들은 요새 와서 시조(時調)까지도 무슨 한 하소연의 연장으로 쓸 생각을 하였습니다. 치미는 이 물결이 어떻게 어떻게 하여 우리 서재(書齋)에까지 들어와서 이것이 시조(時調)라는 까닭으로, 남이 다 돌보지 않는 동안의 수십년(數十年) 손때 뭍여 다듬어오는 물건이란 탓으로 책상설합(冊床舌盒)께서 문(門) 밖으로 끌어들여 나오게까지 된 것은 생각하면 우스운 일입니다. 읽는 이야 내 생활(生活)이란 것을 상관할 까닭이 업고 또 보려는 초점(焦點)이 본디부터 시조(時調)라는 그 형식(形式)에 있다 하면 그러나마의 글로야 남의 눈에 걸지 못할 것이 없을 듯하여 최근(最近) 2, 3년 간에 읊은 것 중(中)에서 아직 108편을 한 권에 뭉쳤습니다.

시(詩) 그것으로야 무슨 보잘 것이 있겠습니까마는 다만 시조(時調)를 한 문자유희(文字遊戱)의 구렁에서 건져내어서 엄숙한 사상(思想)의 일용기(一容器)를 만들어보려고 애오라지 애써온 점(點)이나 살펴주시면 이는 물론 분외(分外)의 영행(榮幸)입니다.


최초(最初)의 시조(時調)로 활자(活字)에 신세진 지 23년 되는 병인(丙寅) 해 불탄일(佛誕日), 무궁화(無窮花) 잎이 칠분(七分)이나 피어난 일람각(一覽閣) 남창(南窓) 앞에서
한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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