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니두스는 신 바빌로니아 제국의 마지막 왕(재위: 기원전 556~539년)이었다. 그에 대한 기록은 페르시아 제국고대 그리스의 기록들, 그리고 성경에 단편적인 기록들만 남아있을 뿐, 아직 상당부분이 베일에 쌓여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최근 고고학적 발굴성과로 인하여 바빌로니아의 최후와 나보니두스에 대한 기록들이 하나씩 복원되고 있는 중이다.

달, 태양과 금성에 기도하는 나보니두스
나보니두스가 달의 신 신(Sin)의 사원을 수리한 것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는 실린더, 대영 박물관

출생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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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니두스의 출신은 분명하지 않다. 일부 학자들은 그가 본래 아시리아 인이었다고 주장하며, 그러한 근거는 키루스실린더 등의 일부 고고학 자료에 따르고 있으나, 페르시아의 정복 초기, 어느 정도 정치적 선전으로 윤색된 자료일 가능성이 있음을 감안할 때, 비판적인 수용이 필요하다.

즉위와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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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니두스는 기원전 556년 어린 왕 라바시-마르둑을 밀어내고 왕좌에 올랐다. 그는 바빌로니아 제국의 과거 영광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의 치세에서 가장 특기할만한 사실은 종교개혁운동이다. 당시 바빌로니아의 주신은 마르둑이었다. 그러나 그는 달의 신 을 더욱 숭배하도록 하였으며, 여기서 오는 반발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치세 후반기, 자신의 아들인 벨사살을 왕으로 세우고 자신은 섭정으로서 제국을 통치 했다.

바빌로니아의 패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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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루스실린더에 의하면, 페르시아 군이 바벨론 시를 포위했을 때, 성안 백성들이 문을 열고 그들을 자신들의 해방자로 맞이했다고 전한다. 헤로도투스의 기록에서는 초기에 키루스는 시 공성전에서 실패했고, 오랜 시일이 걸리자 유프라테스 강의 물줄기를 돌려서 강바닥이 마르도록 했고, 병사들은 마른 강바닥을 통해 행군해 들어갔다고 한다. 크세노폰의 기록에도 이와 비슷한 대목이 보이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언급은 생략되어 있다. 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나보니두스는 보르시파로 도망쳤고, 키루스가 성을 함락시킨 후, 군대를 보르시파로 돌리자 성에서 나와 항복했다. 이후 나보니두스에 대한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키루스가 그를 살려주고 편안한 여생을 보내게 해주었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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