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스 크라나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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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1472년~1553년)는 독일의 화가이다.
루카스 크라나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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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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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크로나흐 |
사망 | 바이마르 |
직업 | 화가, 판화가, 그래픽 예술가, 제도사, 디자이너, 예술가, 데생화가, 동판화가, 약사, 발행자 |
제자 | Antonius Heusler, Hans Cranach, 루카스 크라나흐 (아들) |
사조 | 독일 르네상스 |
부모 | Hans Maler(부) Barbara Hübner(모) |
배우자 | Barbara Brengbier |
자녀 | Hans Cranach, 루카스 크라나흐 (아들) |
주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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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s of Henry IV of Saxony and Catherine of Mecklenburg, Maria Hilf, The Three Graces, Prince Johann of Anhalt, The fountain of youth, Portraits of Johannes and Anna Cuspinian, Portrait of a clean-shaven young man | |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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캥탱 마시, Jan Gossaert | |
서명 | |
묘비 | |
묘소 | 바이마르 |
생애
편집프랑켄 지방의 크로나흐에서 태어났다. 초기의 크라나흐는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와 볼프 후버 등과 이른바 도나우파(派)의 일각을 형성하고, 독일의 산림 풍경을 신선하고 서정적으로 그렸으며, 또 동시에 마티아스 그뤼네발트를 생각케 하는 표현주의적 색채가 농후하고 극적인 박력이 넘치는 작품을 남기고 있다.(전자의 예로서 베를린의 다렘 미술관 소장인 <이집트 도피 徐中의 휴식>, 후자의 예는 뮌헨의 알테 피나코테크 소장의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들 수 있다)
1505년 비텐베르크에 이사한 그는 커다란 아틀리에를 차리고, 우미한 여성의 나체상과 신화화(神話畵)를 많이 그렸으며, 루터나 기타 저명인사의 초상화에도 걸작이 많고 마르틴 루터의 신학을 반영하는 루터란의 가르침 즉 율법과 복음에 대한 신학적 주제를 보여주는 그림도 그렸다. 1537~1544년에 걸쳐 그곳 시장(市長)을 지냈던 그는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았으며, 또한 루터의 종교개혁을 열렬하게 지지하기도 하였고, 만년에 가서는 바이마르의 궁정화가로 지내다가 1553년 거기에서 운명하였다. 또 이름이 같은 그의 아들(1515~1586)도 화가로서 부친의 조수·후계자가 되어 활약하였다.
주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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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s of Henry IV of Saxony and Catherine of Mecklen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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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a Hi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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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hree Gra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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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nce Johann of Anha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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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ountain of y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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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s of Johannes and Anna Cuspin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