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
연민(憐憫/憐愍)은 타인의 고통을 인식하고, 그 고통을 덜어주거나 없애고자 하는 마음이다. 단순한 동정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려는 의지를 포함한다.
연민과 공감의 차이
편집공감이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라면, 연민은 그 이해를 바탕으로 도움을 주려는 적극적인 의지를 포함한다.
거미줄
편집의상대사는 화엄사상을 정립한 것으로 존경받는데 이는 마치 거미줄의 한편에서 신음하는 괴로움이 다른 반대편 거미줄에서도 그 고통이 전해지는 것처럼 이 세상이 거미줄의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짜여 있어서 그 어느 하나라도 홀로 있거나 저혼자 일어난 일은 없으며 이 모두가 연관되어 끝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의 원인과 결과로 얽히고 섥혀있는바 자신의 욕망을 위해 악을 선택하기보다는 서로에게 연민을 갖고 어렵지만 선을 베푸는 것이 결국 모두를 위해 선한 곳으로 만들 수 있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평화롭게 함께 살 수 있는 길이라는 맥락의 언급을 한 바있다.[1]
연민
편집남을 위한 선한 행동으로서의 연민에 대해서 주역에서 이를 언급한 바있다.
- 積善之家,必有餘慶, 積不善之家,必有餘殃。(주역 곤 문언전)[2]
- 선을 쌓는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의 여유가 있는 바인 것이다. 선행을 행하지 못하여 선이 쌓이지 않으면 반드시 넘치는 재앙이 있는 것이다.
이는 '받은 선행보다 준 선행이 많으면 남는 선행이 있고 받은 악행보다 준 악행이 많으면 남는 악행이 있다. 남는 것이 적으면 자신에게서 그치나 남는 바가 크면 세상에 미친다'는 맥락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의 연민
편집프로테스탄트이자 청교도인 토머스 굿윈은 그리스도를 연민의 표상으로 제안한바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이 인류사적으로 유일한 십자가 사건에서 확인되는 바와같이 지극히 온전하고 연민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묘사는 사랑으로 표현되는 보다 더 상대방의 감정을 같이 느끼는 공감능력을 보여주는 그리스도로 본 점에서 인성도 그 결정성이 얼마나 이타적으로 최고조에 이르는 연민의 감정으로 가능할 수 있는지를 잘 언급하고 있다.[3][4]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위키문헌 - 법성게 또는 화엄일승법계도)https://ko.wikisource.org/wiki/%EB%B2%88%EC%97%AD:%ED%99%94%EC%97%84%EC%9D%BC%EC%8A%B9%EB%B2%95%EA%B3%84%EB%8F%84
- ↑ (위키문헌-주역 곤 문언전)https://ko.wikisource.org/wiki/%EC%A3%BC%EC%97%AD%EC%83%81#%E7%AC%AC%E4%BA%8C%E5%8D%A6_%E5%9D%A4
- ↑ Beeke, Joel R., 1952-. 《A Puritan theology : doctrine for life》. Grand Rapids, Michigan. 390쪽. ISBN 978-1-60178-166-6.
- ↑ (성경 개역한글판,위키문헌) 요한복음 제13장34절~제14장 4절 외 - https://ko.wikisource.org/wiki/%EA%B0%9C%EC%97%AD%ED%95%9C%EA%B8%80%ED%8C%90/%EC%9A%94%ED%95%9C%EB%B3%B5%EC%9D%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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