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정성(確定性) 또는 확실성(確實性)은 오류로부터 완전한 보증을 가지고 있거나, 의심의 여지 없이 존재하는 정신 상태를 가진 완전한 지식이다.

실제 세계에 대한 확정성을 구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실패한 활동이라고 널리 평가된다.[1] 이는 대부분 데이비드 흄의 귀납의 문제가 가진 힘에서 기인한다.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실세계에서 확정성은 불필요하거나 때로는 해롭기까지 하다고 덧붙인다. (모든 결함으로부터의 완전한 보증이라는 개념은 불가능하며, 완전한 의심의 결여는 부당하다.)[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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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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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론은 최초의 회의주의 철학자로 평가된다. 피론 사상의 주된 원리는 아카탈렙시아로 표현된다. 아카탈렙시아는 어떤 것의 진리와 연관된 독단으로부터 판단을 유보하는 능력을 말하며, 반박이 동등한 판단으로 발전될 수 있는 주장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서는 지적으로 의심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거나, 티몬이 말한 것 같이,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 다른 것보다 나을 수도 있다.

데카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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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데카르트는 《제1철학에 관한 성찰》에서 완전히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한 모든 믿음을 폐기하였으며, 완전히 알 수 있는 것을 세우려고 하였다. 코기토 에르고 숨이라는 구절은 데카르트의 《성찰》에서 처음 쓰였다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이 구절은 《방법 서설》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술어에서 결론을 추론해야 하는 함축성 때문에 데카르트는 이 명제를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로 더 명확하게 바꾸었다. 이 구절은 데카르트의 제1 명제가 되었다.

비트겐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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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정에 대하여》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죽기 직전에 작성된 일련의 노트이다. 이 저작의 주제는 인식론에서 문맥이 어떤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이 책 전반에서 반기초주의적인 주장을 하였다. 즉, 모든 주장은 의심될 수 있으나 틀 안에서 확정성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명제가] 언어에서 수행하는 기능은 경험적인 명제가 말이 되는 틀로서 작용하는 것이다."[3]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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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이 유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확정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 세상에서 죽음과 세금을 제외하고 확실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절대적인 확정 같은 건 없지만 인간의 삶의 목적에 대한 충분한 보증이 있다.
 
당신이 지금까지 아무 의심도 하지 않았던 모든 것을 의심하려 할 때. 그것을 의심하는 것은 확정을 전제로 한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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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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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eat, F. David (2002). 《From Certainty to Uncertainty: The Story of Science and Ideas in the Twentieth Century》. National Academies Press. ISBN 978-0-309-09620-1. 
  2. “edge.org”. 2017년 7월 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6년 11월 13일에 확인함. 
  3. Wittgenstein, Ludwig. “On Certainty”. SparkNotes.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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